AI 영상 생성 한계, 딸깍 한 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

박스형 카메라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피사체를 그대로 담아내는 그 기계 앞에서 인간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필름카메라가 등장하고, 비디오 캠이 등장하고, 시네마 카메라가 등장하는 동안 그 경이로움의 본질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좋은 한 컷을 얻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고, 그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장면을 골라내는 것. 그것이 영상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말이 들린다. AI가 영상을 뚝딱 만들어준다고. 필자는 이 말에 정중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AI 영상은 정말 ‘딸깍’ 한 번으로 만들어지는가

AI 영상을 실제로 다뤄본 사람이라면 안다. 프롬프트를 수백 번 수정하고, 생성 버튼을 수백 번 누르고, 그렇게 얻은 수백 개의 결과물 중에서 쓸 만한 한 컷을 건져내는 과정이 얼마나 고된지를. 이것이 딸깍 한 번으로 끝나는 작업인가.

사실상 기존 촬영 방식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감독이 수십 번의 테이크 중 최선의 장면을 고르듯, AI 역시 수백 번의 시도 중 가장 나은 결과를 고르는 것이다. 반복의 수고가 형태를 달리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다. AI는 그 반복을 조금 줄여주는 도구다. 영상을 쉽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아니다.

카메라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가 아니다

박스형 카메라에서 필름카메라로, 필름카메라에서 비디오 캠으로, 비디오 캠에서 수천만 원짜리 시네마 카메라로. 장비는 진화했다. 그러나 좋은 영상을 만드는 본질은 단 한 번도 진화하지 않았다. 빛을 읽는 눈, 장면을 구성하는 감각, 이야기를 담아내는 철학. 이것은 어떤 카메라도, 어떤 AI도 대신해줄 수 없다.

초고가 시네마 카메라 앞에 앉은 감독이라도 철학이 없으면 좋은 영상을 만들지 못한다. 스마트폰 하나를 든 감독이라도 철학이 있으면 세상을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장비는 수단이다. 수단이 목적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한국 영화 산업은 왜 죽어가는가

심형래 감독을 기억하는가.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 열등감을 느끼던 시절, 그는 국산 특수효과로 블록버스터에 도전했다. 결과는 혹독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묻고 싶다. 그 도전 자체가 틀렸는가.

산업은 도전하는 사람 위에서 자란다. 실패한 도전을 조롱하는 문화 위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심형래 같은 감독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 사회가 도전의 과정보다 결과만을 보기 때문이다. 흥행에 실패한 도전은 무능으로 기록되고, 그 기록이 다음 도전자를 막는다.

봉준호와 박찬욱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동안, 그들과 다른 방향에서 도전하는 감독들은 자본과 관심 모두에서 외면받는다. 한국 영화 산업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검증된 공식 안에서만 자본이 움직이고, 공식 밖의 도전은 고사한다. 산업이 다양성을 잃으면 결국 공식마저 낡아버린다.

20년간 오르지 않은 영상 단가

영상 산업의 단가는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비 가격은 올랐고, 물가는 올랐고, 인건비는 올랐지만, 영상 한 편에 지불하는 금액은 제자리걸음이다. 왜인가.

영상을 만드는 기술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도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그것이 영상의 가치를 낮추는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누구나 펜을 들 수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의 가치가 낮아지지 않듯, 누구나 카메라를 들 수 있다고 해서 좋은 영상의 가치가 낮아지지 않는다.

문제는 가치를 제대로 매기지 않는 시장 구조다. 싸게 쓸 수 있는 영상이 넘쳐나는 시장에서 제 값을 받는 영상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그 구조 속에서 좋은 영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시장을 떠난다. 그리고 시장에는 저단가 영상만 남는다. 이 악순환이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딸깍 이후에도 남는 것

AI가 발전하면 영상 산업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철학 없는 영상이 위협받는 것이다. 기술로만 만든 영상은 기술로 대체된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의 감각으로 이야기를 담아낸 영상은 대체되지 않는다.

박스형 카메라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었다. 초고가 시네마 카메라도, AI 영상 생성 도구도, 결국은 그 눈을 대신해줄 수 없다.

딸깍 한 번으로 영상이 완성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수백 번의 시도 끝에 건져낸 한 컷에 영상의 본질이 있다. 그것은 AI 이전에도, AI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스틸라이프필름

김재욱 / 영상전문기자 · 스틸라이프필름 대표 시흥을 기반으로 영상 저널리즘과 영상 제작을 병행한다. 사이버타임즈 영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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