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어버이날, 경기도립노인전문시흥병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가족과 의료진이 함께 축하를 나누는 자리. 누군가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연례행사일지 모르지만, 이날 양요환 원장의 말은 달랐다.
Thank you for reading this post, don't forget to subscribe!“단순한 잔치가 아닙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무게가 달랐다. 병상에 누워 희미해져 가는 노인의 사회적 생명을 되살리는 일. 그것이 이 행사가 그에게 갖는 의미다.
PART 1“지금 이 사회에서 노인은 폐품 취급을 받습니다”
자본주의와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 경제적 생산성과 노동력이 떨어진 노인은 효용 가치를 다한 폐품처럼 취급받는 냉혹한 현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양 원장은 그 현실을 가감 없이 꺼냈다.
“과거 요양병원이 처음 생겨날 무렵만 해도 시설에 입소하는 어르신들은 스스로를 죽으러 가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자식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휴대전화를 버리며 깊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죠.”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 가치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다는 생물학적 생존 여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의 가치는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어버이날 행사를 비롯해 봄꽃 향기를 직접 맡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환자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자연의 일부로서의 감각과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회적 교감을 잃지 않도록 지지하는 것. 그것이 양 원장이 생각하는 돌봄의 핵심이다. 병원 직원들에게 환자를 향한 반말이나 하대를 절대 금지하고 존댓말 사용을 원칙으로 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PART 2“상처에 농약을 들이붓던 농민을 봤습니다”
이 철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66년 대학 진학 당시 참여했던 농촌 봉사 동아리 ‘녹향(綠鄕)’ 활동이 그 출발점이었다. 서울 농대생들이 주축이 된 이 단체와 함께 경기도 가평 두밀리로 봉사를 떠났을 때,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무좀이 심해 발이 쩍쩍 갈라진 농민이 상처 부위에 맹독성 농약을 들이붓고 있었습니다.”
병원도 약국도, 기초 의료 지식조차 없던 척박한 농촌의 현실이었다. 그 자리에서 청년 양요환은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PART 3“사회가 병들면 사람도 병든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이후에도 현실과 학문의 괴리는 계속됐다. 1960~70년대 한국의 시골과 빈민촌에는 척추 결핵과 장 결핵으로 뼈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당시 교과서는 전부 미국 서적이었고, 그 안에는 비만 환자의 유방 축소 수술이나 지방 흡입술 같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 모순 속에서 그는 19세기 독일 병리학자 루돌프 비르효의 연구를 접하며 사회의학에 눈을 떴다. 질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생물학적 요인만이 아니라 열악한 주거 환경, 빈곤, 영양실조 등 불평등한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이었다. 환자 개인에게만 약을 처방할 것이 아니라, 그 환자가 속한 주거 환경과 가족, 지역사회 전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 그것이 그가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커뮤니티 메디신의 출발이었다.
PART 4판자촌에서 시작된 녹향, 그리고 지금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속에 서울 철거민들이 성남 일대로 강제 이주당하며 도시 빈민 문제가 극에 달했다. 양 원장은 사회의학 연구회 동료들과 함께 주말마다 성남 판자촌을 찾아 의료 봉사를 이어갔다. 이 활동이 씨앗이 되어 ‘신천연합의원’이 설립됐고, 이후 종합병원급 규모로 성장했다. 병원이 의료 법인으로 전환될 때 그들은 법인의 이름을 ‘풍산의료재단’으로 명명했다. 가난한 이웃을 돕겠다 다짐했던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PART 5“필수 의료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은 참담하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생명을 직접 다루는 필수 의료 분야는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국가가 의료 수가를 엄격히 통제해 병원 경영이 힘든 구조인 데다, 불가피한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의사 개인이 수억 원의 배상 책임을 지거나 법정 구속까지 당하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반면 피부과, 성형외과, 미용 시술 분야는 의료보험의 통제를 받지 않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유능한 의사들이 필수 의료를 기피하고, 심지어 전문의 자격을 포기한 채 일본 등지로 건너가 성형 기술을 배워 개업하는 상업화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고 그는 개탄했다.
요양병원이 처한 현실도 다르지 않다. 치료를 마친 중환자들이 퇴원 후 갈 곳이 없어 밀려들고 있고, 수가 통제로 인해 물리치료와 재활치료조차 마음 편히 제공하기 어렵다. 상급 병원으로 응급 이송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풍산의료재단 법인은 수익 위주의 병원 증축이나 돈벌이 투자를 철저히 배제한다. 만성적인 적자와 경영난을 감수하면서도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의 목적을 최우선으로 지키고 있다. 반세기 전 농약으로 상처를 씻어내던 농민의 곁에서 의사의 길을 맹세했던 그 청년의 마음 그대로, 지금도 환자들의 마지막 존엄과 사회적 생명을 지켜내는 방파제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