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대표 —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물건, 그 감동”, 매화동 3평에서 1,000평 박물관을 꿈꾸다

윤지영 대표

시흥시 매화동에 자리한 ‘빈티지음향’의 윤지영 대표는 스스로를 “전국에서 제일 어린 빈티지 사장”이라고 소개한다.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오디오를 수집하고 복원해 매니아들에게 판매하는 이 일의 종사자들은 대개 60대에서 80대. 그 사이에서 그는 단연 젊은 축이다. 목소리를 다루던 보컬 트레이너가 소리를 담는 기계의 세계로 넘어오기까지, 그 길에는 통장에 든 100만 원과 3평짜리 창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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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목소리를 다루던 청년, 소리의 세계로

윤 대표의 20대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공군 헌병대에서 병장으로 제대한 뒤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했고, 시대 흐름에 맞춰 시작한 유튜브는 구독자 1만 7천 명까지 늘었다. 첫 영상을 올린 다음 날 눈을 떠보니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 있었다는 그는 “그 뒤로도 하루에 500명, 1,000명씩 쭉쭉 올라가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전업의 계기는 몸이었다. 하루에 레슨을 다섯에서 일곱 명까지 하며 목을 혹사하던 그는 성대가 나이 들수록 노화하는 기관이라는 사실 앞에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어릴 적부터 집에 늘 있던 빈티지 오디오였다.

“앰프랑 스피커 하나 들 힘만 있으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PART 2거실을 채운 취미, 사업이 되다

처음엔 그저 취미였다. 사서 듣고 또 사서 듣기를 반복하다 보니 거실은 물론 방까지 오디오로 가득 찼다. 이건 아니다 싶어 소매로 산 가격에 어느 정도 마진을 붙여 인터넷에 올렸더니 올리는 족족 팔려나갔다. 계산이 섰다. 도매가로 사서 팔면 그 이상으로 남길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마음먹은 즉시 3평짜리 샌드위치 판넬로 창고부터 지었다. 집에 있던 물건을 옮기며 시작한 장사, 그때 가진 것은 소매로 사둔 오디오들과 통장에 든 100만 원이 전부였다. 하루 세 시간씩 자며 오디오를 만지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500배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PART 3억울함에 흘린 눈물, 그리고 박수

버텨온 시간에는 눈물도 있었다. 좁은 창고에서 막 장사를 시작했을 무렵, 그는 손님 앞에서 억울함에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런 눈물들이 모여서 지금처럼 단단해진 것 같다”고 그는 돌아봤다.

보람도 그만큼 선명하다. 여든이 넘은 어르신이 오디오 설치를 의뢰해 댁에 갔더니 가족들이 모두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치를 마치고 음악을 틀자 온 가족이 박수를 치며 고마워했다. “정말 벅차고 보람 있었다”는 순간이다.

PART 4“더 이상 만들지 않는 물건, 그 감동”

윤 대표는 빈티지 오디오의 매력을 감동에서 찾는다. 요즘 기계도 좋지만, 빈티지를 찾는 이들의 이유는 하나같이 같다는 것이다.

“이제 더는 만들지 않는 물건, 가치 있는 물건, 옛날 향기 같은 걸 느끼고 싶어서.”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선 감동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물론 고충도 있다. 40년, 60년 된 물건을 다루다 보면 아무리 점검하고 복원해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이를 소비자가 온전히 이해해주기는 어렵고, 그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실제로 대부분 이런 이유로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는 지금이 장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든 시기라면서도 “취미의 영역이다 보니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 고객층은 50대에서 90대까지다. 먼 곳에서도 열정을 안고 찾아온다. 매화동에서 오래 살아온 그는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 없다. “본능적으로 다른 데는 가기가 싫다”며 이 동네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다.

PART 5“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도 성공할 수 있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동력은 인정 욕구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고, 남과 비교당하는 것이 싫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잘한 결정으로는 빈티지 오디오 사업을 시작한 것을, 후회로는 몇 년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을 꼽았다.

윤 대표는 10년 뒤 자신의 이름을 건 1,000평 이상 규모의 박물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젊은 유입이 없으면 언젠가 혼자 이 사업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안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마음을 두고 있다. 빈티지 오디오를 소개하고, 제품마다 있는 고질병이나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점검법을 알려주는 채널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빈티지 오디오를 더 많이 알리고, 젊은 고객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높은 진입장벽을 허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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